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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 리뷰

『골든아워』(이국종)

by 잔세폴 2019.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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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역사

조직의 저항과 반대, 그 모든 것을 다루는 책.

 

 

개인적으로 에세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저자의 사소한 일상을 늘여놓으며 거창하게 '책'이라고 출판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고, (그저 일기에 불과한 것을)

그동안 접했던 에세이 중 기억에 남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국종 교수의 이야기는 달랐다.

단지 한 개인의 일상을 낱낱히 들여다보는 것을 넘어

신이 묵묵히 살아오면서 지켰던 어떠한 신념,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치관과 원칙을 담아내고 있었다.

 

에세이라기 보다는 한편의 소설같기도 했고, 의사는 아니지만 수술방을 들여다 볼 수 있었으며,

매일매일 생과 사를 오가는 환자를 맞는 한 의사의 생각을 깊이 파고들 수 있는 책이었다.

 

나는 감히 이 책을 나의 인생 책이라고 단정하겠다.

앞으로 수백권의 책을 더 읽겠지만, 이 책만큼의 진한 여운과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책은 많지 않을 것 같다.

 

『골든아워』에서 이국종 교수는 중증외상센터에서의 모든 기록을 담아냈다.

많은 사건과 사고, 수술을 격양된 조로 이야기하며 계속해서 반복하는 주제가 있다.

 

1. 바뀌지 않는 시스템

2.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

3. 육체 노동을 하는 최말단 노동자의 비참한 죽음들

 

살 수 있는 목숨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된 시스템이 갖춰져있지 않아 죽음에 내몰리는 환자를 이야기한다.

『골든아워』는 대한민국 중증외상외과의 답답한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한 개인의 투쟁의 역사이자, 과정이다.

 

투쟁의 여정에서 함께 고생하고 희생하며 곁에 있어 준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도 글의 곳곳에 묻어난다.

자신의 고집과 원칙때문에 동료들이 아픈 모습을 지켜보며 

그저 미안함만이 있다는 이국종 교수의 이야기에는 아픈 울림이 있었다.

자신의 심장보다 동료의사 정경원의 다리가 우선이라는 그의 담담한 글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중증 외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위험한 곳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최말단 노동자들 이라는 점도

『골든아워』에서 계속 언급되는 부분이다.

 

응급실과 죽음, 계층 간의 연관성에 대해 단 한번도 생각해 볼 이유과 기회가 없었는데, 

책을 통해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사고로 죽음에 내몰리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여론을 형성하기에는 너무나 멀리 있는 노동자 계층이라는 것을.

그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시스템을 바꾸어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살려보려는 이국종 교수.

 

책을 읽으며 문득 궁금해졌다.

이국종 교수는 무엇을 위해 조직과 시스템을 상대로 투쟁하는 것일까?

자신을 극한으로 내몰면서까지 제대로된 시스템을 정착시키고자 노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간단했다.

"중증외상센터의 공공적 가치를 외면할 수 없었다."

 

어쩌면, 죽지 않아도 될 생명들이 꺼져가는 것을 수도 없이 지켜봤기에

이 지독한 현실을 외면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무엇을 나의 삶의 방향으로, 원칙으로 삼고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겪어야하는 수많은 좌절과 부딪힘, 불합리함을 어떠한 태도로 맞아야 하는가.

나의 신념과 원칙을 흔들림 없이 굳건히 지켜낼 수 있을까?

사실 겁이 난다.

 

『골든아워』를 읽으며 세상을 상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굳건히 낼 수 있는 용기와 당당함,

그 태도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아감에 있어 망설임과 주저함이 있을 때

이 책을 다시 한번 꺼내볼 것이다.

 

이국종 교수는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글을 전문적으로 배운적도,

많이 써본 적도 없어서 어설프고 어색할 수 있다고 겸손한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단어, 문장의 섬세함에 감탄하며 읽었다.

 

 

 

*그대와 함께 나누고픈 구절

고급 스테인리스강으로 만들어진, 이 무거우면서도 차가운 수술 기구와 첨단 과학이 응축된 장비들이 사람의 혼을 이승에 잡아 놓는다.

원칙을 지켜야 한다,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옳은 것을 주장하며 굽히지 않는다, 안 될 경우를 걱정할 것 없다, 정 안 되면 다시 배를 타러 나가면 그뿐이다. 나쁜 보직을 감수할 자세만 되어 있으면 굳이 타협할 필요가 없다. 원칙에서 벗어나게 될 상황에 밀려 해임되면 그만하는 것이 낫다. 그것은 단순한 논리였다. - 이국종 교수 인생의 방향이 되어준 배 위에서의 대화

나는 죽지 않아도 될 환자들을 살릴 수 있는 법을 알면서도 제대로 된 시스템을 정착시킬 수 없는 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자신의 부족함을 두려움 없이 드러내 보였다.

조직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바가 외상외과 의사라는 내 존재 가치의 근간을 뒤엎는 것이므로 그에 수긍하며 물러서지 못한다.

할 일을 하고 그 자체로 인정받고 내가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곳에서 나는 원흉도, 돌연변이도 아니었다. 제대로 된 시스템 속에서 일하면서, 한국에 다시 돌아가면 외상외과 일을 계속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 일하며 겪는 허무와 무의미를 더는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직장에서 인정받고, 여유가 생기면 동료들과 편히 술 한잔 기울일 수 있었다. 내가 삶에서 바란 것은 그 정도였다. 앞으로도 이만큼만 살았으면 싶었다.

강물은 유예된 날들을 너무 빨리 끌어가버렸다.

 그는 답이 당장 보이지 않아도 정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면 된다고 했다.

산 자들의 안위에 죽어가는 이들이 밀려났다.

그러나 정경원의 다리가 내 심장보다 우선이었다.

숨을 크게 들이쉴 때 바다의 짠 내가 훅 밀려들었다. 보이지 않는 파도가 이곳까지 밀려와 나를 쓸어갔으면 싶었다.

나는 중증외상센터의 공공적 가치를 외면할 수 없었다.

투명한 것이 목을 넘을 때 나는 한없이 서글퍼졌다.

나는 내게 날아오는 것이 돌이든 화살이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것은 이제 두렵지 않았으나 단지 지겨웠다.

거품이 사라지고 컵이 젖어드는 걸보며 생각했다. 의사들의 노력으로 더 많은 생명을 건진다고 해도 결국은 다 죽는다. 단지 연장할 뿐이다. 의사가 사그라드는 생을 애써 붙잡아 일으켜 세울 수는 있어도 죽음을 원초적으로 없앨 수는 없다. 나는 때때로 한없이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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