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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 리뷰

명화에 대해 흥미 갖는 법: 방구석에서 미술관 즐기기

by 잔세폴 2021.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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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에 대해 흥미 갖는 법: 방구석에서 미술관 즐기기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준 작품이 무엇이었냐는 물음에 나의 지인 Y는 모네의 그림을 이야기했다. 미술관에서 본 모네의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당시에 그 대답을 듣고 무척이나 부러웠다. 그림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의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어떤 감정일까? 단 한 번도 그림의 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나로써는 그 강렬한 감정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세계에 대한 동경이 생겼다.

 

조원재 작가의 <방구석 미술관>이 해답을 줄 수 있는 첫 번째 열쇠가 되었다.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딱히 제목과 표지가 끌리지 않아서 집어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 전자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가볍게 읽어보자는 심산으로 출퇴근 길에 읽었다. 왜 진작 읽지 않았을까!

 

‘Y가 그림을 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이유가 이것이구나를 드디어 알아냈다.

 

<방구석 미술관>이라는 책은 그림을 해석하고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작품에 집중하는 지루한 해설서가 아니라, 화가인 인물의 삶을 보여주는 책이다. 에드바르트 뭉크가 왜 절규라는 작품을 그려낼 수 밖에 없었는지, 애곤 실레가 왜 누드화에 집착했는지를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에드가 드가는 왜 발레 그림을 많이 그렸을까?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는 왜 강렬히 타오르는 일촉즉발의 샛노란색이 많을까?

 

왼쪽: 빈센트 반 고흐 <해바라기> 1888년 / 오른쪽: 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 1888년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를 좀 속일 필요가 있었다

 

순도 높은 노란색을 많이 쓰던 고흐의 답이다. 고흐가 네덜란드에서 파리로 상경할 당시에 파리에는 무려 70도의 독주인 압생트라는 술이 유행했다. 파리의 수 많은 예술가들은 압생트를 마시며 찾아오는 환각을 통해 창작 활동에서 영감을 받았다. 고흐 역시 압생트를 마시다가 결국 중독되어 버리고 만다. 압생트의 가장 후유증은 세상이 노랗게 보이는 황시증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고흐는 심각한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이 노랗게 보이게 되는 지경에 이른다.

 

고흐가 바라본 세상이 노란색이었기 때문에 고흐의 작품에 노란색이 많았던 것이다.

 

<방구석 미술관>에서는 에드바르트 뭉크, 프리다 칼로, 에드가 드가, 빈센트 반 고흐,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폴 고갱,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폴 세잔,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바실리 칸딘스키, 마르셀 뒤샹14명의 삶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책에서 인상깊게 읽었던 문장이다.

 

나는 자신의 심장을 열고자 하는 열망에서 태어나지 않은 예술은 믿지 않는다. 모든 미술과 문학, 음악은 심장의 피로 만들어져야 한다. 예술은 한 인간의 심혈이다.
  -
뭉크
자신만의 예술 주제를 찾던 젊은 뭉크는 자신과 자신의 삶에서 예술을 원천을 길어옵니다. 자신을 삶을 둘러싼 죽음, 가혹한 삶으로부터 느끼는 감정을 그림 위에 쏟아내기로 한 겁니다. 이것이 그가 감점을 표출하는 표현주의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이유입니다.
보고 있는 것이 아닌 본 적이 있는 것을 그리는 남자. 자신의 삶을 관통해 피 흘리게 한 사건을 숙성시킨 후 심장에서 끄집어내어 예술로 표현하는 남자. 누나가 죽은 지 9년 후에 그 기억을 꺼내 <병든 아이>를 그린 남자 뭉크. 그는 총알이 자신의 손을 관통했던 기억 또한 숙성시켜 5년이 지난 1907, 심혈을 쏟아 <마리의 죽음>을 그립니다.
그는 어려움 속에서도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살아가던 보통의 여인들에게 존경을 바친 남자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드가의 그림이 시대를 초월해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입니다.
15세기 르네상스 이후 서양 미술의 절대 법칙으로 군림해왔던 표현법이 있는데요. 바로 원근법입니다. 평평한 벽면과 캔버스를 3차원의 공간으로 만드는 신통한 아이디어였죠. 1,000년 전의 중세시대 동안 비현실적이었던 회화에 마치 실제 같은 가상공간을 탄생시키는 절정의 기술이었습니다.
세잔은 모네의 독창성이 발현되는 근본 원인을 통찰한 것입니다. 손기술이 중요한 회화가 아닌, 독창적 개념을 만들어내는 머리가 중요한 회화라는 것을요. 미래의 미술이 나아가는 방향을 모네의 머리에 들어가 발견했습니다. 수많은 젊은 화가들이 인상주의의 표면에 드러나 짧은 붓 터치를 맹목적으로 좆고 있을 때 세잔은 짧은 붓터치가 나온 근원을 자신의 회화에 적용한 것이죠
신이 세운 뜻을 식지 않는 열정과 각고의 노력으로 이뤘을 때 느낄 수 있는 게 정신적 만족입니다. 고민, 시도, 좌절 그 무한한 반복 끝에 발견한 티끌만한 빛 하나에도 차오로는 만족감이죠. 그는 평생을 그 만족감을 위해 매일 자연에 나가 배우는 자세로 캔버스 앞에 섰습니다.
나는 뭔가 하고 싶은데 그게 뭘까? 나는 뭔가 동경하는데, 무엇에 대한 것일까?

- 폴 고갱

 

<방구석 미술관> 2편에서는 한국 화가의 삶을 다루고 있다.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고 싶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책을 읽으며 인물의 삶에 직접 들어가 보니, 예술가 한명 한명이 얼마나 그림에 진심이었는지를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마치 그들과 삶을 함께한 기분이었다.

 

폴 세잔은 인상주의의 대가인 클로드 모네의 그림을 보면서 모네의 그림에서 발현되는 독창성의 근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했다. 모네의 그림이 독창적이지만 무언가 불안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마침내 폴 세잔은 찰나에 스치는 빛을 담다 보니 그림에 조화와 균형이 없다는 통찰을 얻고 조화와 균형을 담아내자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통찰은 자연의 본질을 담자는 것과 함께 폴 세잔의 평생 과업이 된다.

 

자신이 사랑하는 일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와 탐구를 통해 평생의 과업을 찾을 수 있는 삶은 정말 멋지고 풍요로운 삶이다.

폴 세잔의 삶을 통해 과연 나는 폴세잔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나의 평생 과업을 찾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Y가 모네의 그림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것은 모네가 그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았기 때문은 아닐까?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1873년

 

작품을 단편적으로 이해하기 보다, 작가가 그것을 통해 표출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한다면 우리도 그림을 보는 공감의 눈을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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