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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영화 리뷰

이반 일리치의 죽음(톨스토이) - 우아한 형제들 김봉진 추천 도서

by 잔세폴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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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둔 인간의 심리와 감정, 자기반성으로 이어지는 생각을 세밀히 기술한 소설로, 최근 했던 생각과 비슷해서 많은 공감과 위안을 받았다.

 

얼마 간 '통증'에 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몸이 건강할 때는 마치 몸이 없는 것처럼 가볍고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통증이 시작되는 순간, 아픈 몸은 나에게 말을 거는 듯 아픈 부위의 감각을 미친듯이 느끼도록 만든다.

 

라식 수술 부작용으로 눈 통증과 시림, 건조함이 심화되어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눈을 뜨고 있는 것 자체가 고통인 날이 늘어갔다.

 

이반 일리치가 옆구리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했던 것처럼, 나 역시 여러 안과를 전전했다.

그런데 의사들은 하나 같이 라식 수술이 잘 됐고, 시력도 잘 나오며 눈이 아주 건강하다고만 했다.

나의 고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인공눈물만을 처방했다.

 

통증으로 일을 하는 것 조차 고통이 되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내야 하는지 눈 앞이 깜깜해졌다.

무엇을 목표로 뛰는지도 모르던 삶을 잠시 멈추고 이반 일리치처럼 나의 모든 삶을 돌아봤다.

 

 

왜 이런 고통이 나에게 생긴거지?

평생 통증과 시림을 달고 살아야 하나?

눈이 아픈채로 산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눈이 아프지 않았을 때의 삶은 어땠지?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시간을 되돌려 수술을 하지 않을 때로 돌아가고 싶다.

 

 

이반 일리치가 방에 틀어박혀 자기반성과 몰두에 빠진 것처럼, 나 역시 한 동안 '통증'과 '삶'에 대해 깊게 고뇌했다.

아픈 것에 대한 생각만 하니 우울감이 밀려온 날도 있었다. 육체의 고통은 정신까지 피폐하게 만든다.

통증과 고통은 삶의 모든 의지를 송두리째 흔들어버린다. 결국 죽음 앞에 우리를 데려다 놓는 것처럼 말이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결국 직장을 그만두게 될 날이 올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반 일리치가 죽음의 문턱에서 결국 죽음을 받아들였던 것처럼, 직장을 그만둔다는 결심이 내겐 죽음과도 같았다.

 

톨스토이는 인간이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 것은, 죽음을 맞는 순간의 자기반성을 통해서라고 말했다.

 

다행히 두 달 동안 잘 관리하고 치료한 덕분에 지금은 증상이 많이 나아졌다.

통증과 함께한 두 달의 끝자락에 만난 이 소설은 그동안 겪었던 나의 생각과 감정을 다시 한 번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 덕분에, 죽음을 가까이 두지 않고도 자기 반성을 할 수 있었다.

목표가 뭔지도 모른 채 질주했던 삶의 초점은 '나'와 '건강'에 맞춰졌고, 앞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데 모든 시간과 비용을 쏟기로 결심했다. 

 

편안함과 행복감을 자주 느낄 수 있는 인생을 만들어 봐야겠다.

 

책 속 기억에 남는 문장

삶이란 가볍고 유쾌하고 우아해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대로 이반 일리치의 삶도 대체로 그렇게 흘러갔다.
이반일리치에게는 마치 촛불처럼 다른 모든 것을 환히 밝히는 기쁨이 있었는데, 바로 시끄럽지 않고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과 즐기는 카드놀이였다.
주위 사람들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것이 전과 다름없이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반일리치는 파멸의 끝자락에 매달려 자신을 이해하고 가엾게 여겨주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롭게 살아갔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오직 죽음만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했다.
그는 예전 즐거웠던 삶의 순간들을 기억 속에 떠올려 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예전 즐거웠던 그 모든 순간이 이제 와서는 그때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지금 네가 원하는 건 대체 뭐지? 사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인가?
병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그러니까 처음 의사를 찾아가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반 일리치는 서로 반대되는 두 가지 마음을 끊임없이 오가며 살아야 했다. 이해할 수 없는 끔직한 죽음을 기다리는 절망감이 하나였고, 자기 몸의 기능을 열심히 관찰하면 회복될 수 있을 거라는 게 다른 하나였다.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건가! 이 고통은, 죽음은..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사흘 내내 이반 일리치에게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는 눈에 보이지 않고 저항할 수도 없는 힘에 떠밀려 들어간 검은 자루 속에서 몸부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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