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영화 리뷰

이 시대의 자화상 그리고 비극의 기록-『비행운』(김애란)

by 잔세폴 2018. 11. 23.
반응형


참여하고 있는 독서 모임을 통해 김애란의 비행운을 접했다.

이미 비행운을 읽어본 주변 사람들은 책을 읽을수록 우울해진다는 후기를 남겼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읽으면 우울해질까? 궁금해졌다.

 나는 책을 다 읽은 후에야 책의 제목 비행운에서 그 의미를 추측할 수 있었다.



작가 김애란은 항공기가 남기는 가늘고 긴 구름인 비행운(飛行雲)을 보며 어디론가 훨훨 떠나고 싶어 하지만

결코 자신들의 구역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의 현실을 처참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늘의 이상을 좇으려 할수록 행운이 점차 멀어져가는 비행운(非幸運)의 상황에서

비행운(飛行雲)과 비행운(非幸運) 간의 간극을 통해 비극을 그려내고 있다.

 

비행운의 등장인물들은 비행운을 그리며 떠났다고 하더라도 

동경했던 세계와 조우하지 못한 채 더 나쁜 상황으로 전락하고 만다.

 

비행운』 이러한 주제로 관통되는 8개의 단편소설로 엮여있다.

 

1. 너의 여름은 어떠니

2. 벌레들

3. 물속 골리앗

4. 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

5. 하루의 축

6. 큐티클

7. 호텔 니약 따

8. 서른

 

당연히 8개 단편집의 공통 장르는 비극(tragedy, 悲劇)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는 비극을

"인간의 마음 속에 생기는, 자신의 동료나 또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의 갈등의 결과로 생기는 인간의 고통과 불행"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렇다.


주제가 비극인 8개 소설을 내리 읽으니, 우울해질 수 밖에 없었다.

나 역시 소설을 읽는 내내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침체되었던 것 같다.

 

이 책의 모든 등장인물은 한없이 막막하고 아득한 상황에서 그보다 더 나쁜 상황으로 치닫는 상황을 겪는다.


작가 김애란은 등장인물의 비극적인 상황들을 상세하고 집요하게 묘사한 후

결말을 내놓지 않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어딘가 모를 찝찝함을 남긴다.

 



『비행운』을 읽은 전반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 조차 없어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담하지만 무참히 그려낸 소설이 아닐까 싶다.


혹자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등장인물과 자신의 상황을 비교하며 깊은 공감을 할지도 모르겠다.

또한 누군가는 굳이 왜 이런 우울한 소설을 읽냐고 반박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비극"이라는 장르를 통해

세상에 나보다 불행한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 나와 같은 비극을 겪는 사람이 또 있다는 공감을 얻는다.


비극이라는 장르는 그러기 위해 존재하니까.




※ 그대와 함께 나누고픈 구절

 일단 뭔가 알게 되자 그 앎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는 몰라보게 예뻐져 있었다. 평범한 기성복 차림으로 나왔는데 분위기가 다르고 선이 달랐다. 긴장을 먹고 사는, 그러나 그만큼의 인정과 보상을 섭취하는 사람이 내뿜는 기운이 느껴졌다.

 저는 지난 10년간 여섯 번의 이사를 하고, 열 몇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어명의 남자를 만났어요. 다만 그랬을 뿐인데, 정말 그게 다인데. 이렇게 청춘이 가버린 것 같아 당황하고 있어요.

 그동안 나는 뭐가 변했을까. 그저 좀 씀씀이가 커지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물건 보는 눈만 높아진, 시시한 어른이 돼버린 건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요. 

이십대에는 내가 뭘 하든 그게 다 과정인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모든 게 결과일 따름인 듯해 초조하네요.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겨우 내가 되겠지



반응형

댓글